겸손 |
2024-02-04 23:24:57 |
조회: 104
“이승만 죽이기는 北의 공작…이제 ‘진짜 이승만’을 마주하세요”
[아무튼, 주말]
[박돈규 기자의 2사 만루]
이승만 추적한 다큐멘터리
‘건국전쟁’ 만든 김덕영 감독
입력 2024.02.03. 03:00
김덕영 감독은 이승만 다큐멘터리 ‘건국전쟁’을 만들고 개봉하기까지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왔다. “너 미쳤냐?”며 모두가 반대했다. “자료를 들춰보니 진실은 달랐습니다. 이 다큐를 제작하는 과정은 70년 된 거짓말들과의 싸움이었어요.”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4·19 이후 ‘이승만’은 일종의 금기어였다. 미제의 앞잡이, 친일파, 독재자, 살인마…. 이승만(1875~1965) 전 대통령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는 온통 부정적이었다. 거짓말도 계속하면 진실이 된다.
지난 1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건국전쟁’(감독 김덕영)은 이승만의 진짜 모습을 보여준다. 검은 스크린에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세우기 위해 애쓴 한 대통령의 이야기”라는 자막이 흐르며 영화는 시작된다. 김덕영(59) 감독은 “대학 시절에 나도 그 이름은 부르지 마, 그 길로는 가지 마, 지저분하고 악취가 날 거야 등등 이승만에 대한 가짜 이데올로기를 학습받았다”며 “그런데 객관적 자료와 증거를 종합해 보니 그는 나라의 기틀을 잡은 애국자였다”고 했다.
우리가 이승만을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최근 서울 중랑구 한 스튜디오에서 만난 김 감독은 “전국을 돌며 시사회를 열었는데 많은 관객이 눈물 흘리며 응원해주신다”고 말했다. “이 다큐를 제작하는 과정은 ‘거짓말들과의 싸움’이었습니다. 이승만에 덧씌워진 온갖 비난과 죄과는 대부분 근거가 없었어요. 공(功)은 지우고 과(過)만 부각한 역사 해석, 미처 몰랐던 이승만의 삶과 투쟁에 대해 성찰하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김덕영 감독은 “다큐멘터리 ‘건국전쟁‘을 본다는 건 386 운동권 세대에게 익숙한 ‘해방전후사의 인식’ 너머, 아니 그것에 가려져 있던 세계를 마주하는 일과 같다”고 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만지면 안 되는 이름
다큐와 영화의 차이를 묻자 그는 “사실이죠, 사실”이라고 답했다. “영화는 감독이 이야기를 마음대로 지어내지만 다큐는 사실에 바탕을 둡니다. 특히 시각적 증거를 제시해야 해요. 진실을 추적하는 게 힘들지만 뭔가 찾아냈을 땐 뿌듯해요.”
-추구하는 세계도 완전히 다르겠군요.
“상업영화는 결국 보상이 있어야 합니다. 부와 명성도 얻지요. 다큐는 가물에 콩 나듯 흥행작이 나오지만 절대다수는 돈이 안 돼요. 그럼에도 이 일을 하는 이유는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그게 뭐였습니까.
“지난 70년 동안 지워지고 왜곡된 이승만의 진실요. 조리돌림당한 위인을 더 늦기 전에 원상회복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전작 ‘김일성의 아이들’(2020)과도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문제의식이 연결돼 있어요. 이승만 지우기, 이승만 죽이기라는 거대한 공작의 설계자가 북한입니다. 남한의 친북 주사파 세력은 그 지령대로 움직였고요. 정신적으론 간첩이었습니다. 주변에 학생운동을 하던 친구가 많았는데, 부끄럽지만 저도 당시엔 눈을 감았고 동조했지요.”
-감독님은 몇 학번인가요.
“서강대 철학과 84학번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1965년 7월에 돌아가셨는데 제가 65년 7월생이에요. 이 다큐는 내가 하라는 뜻이구나 했습니다(웃음). 386으로 불린 저희 세대가 그분한테는 죄인이에요.”
-’건국전쟁’은 분단 이후 남과 북이 극단적인 두 나라로 나아간 배경을 설명하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세력이 벌인 ‘역사전쟁’을 포착했습니다.
“몇 년 전에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책을 감명 깊게 읽었어요. 최근 재조명된 한반도 위성사진처럼, 분단 70여년 만에 큰 격차가 발생한 까닭은 정치 제도때문입니다. 어느 나라든 건국 초기엔 굉장히 어지러워요. 그 혼란을 뚫고 자유 번영의 기초, 대한민국의 토대를 닦은 건국 세대의 공로는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그 중심에 이승만이 있었어요.”
-그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다고요?
“저는 솔직히 이승만이라는 인물에 대한 이해가 천박했어요. 역사에 대해 무지했습니다. 짙은 안개 같은 거짓의 이데올로기가 오랫동안 이승만을 중심으로 드리워져 있었어요. 대학 때 배운 이승만은 ‘부정과 모순의 종합선물세트’였고, ‘그쪽은 가시덤불이고 낭떠러지니까 가지 마’라는 말을 무비판적으로 따랐습니다. 이 다큐는 통렬한 자기반성과 수치심에서 출발한 셈이에요.”
-다큐에 전문가 20여 명이 등장해 이승만에 대해 말합니다. 어떤 평가가 크게 들렸나요.
“그레그 브레진스키 미국 조지워싱턴대 교수의 말입니다. ‘건국은 선언적으론 의미가 없다. 그 나라가 장차 어떻게 유지하고 생존할 것인가, 그 시스템을 만드는 게 진정한 건국이다.’ 아버지가 호적은 등록했지만 가계를 돌보지 않는다면 그게 가정인가요?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토·국민·주권은 기본이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토양을 누가 만들었습니까? 토지개혁, 여성 투표권,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모두 이승만의 업적이에요.”
“이승만 죽이기는 北의 공작…이제 ‘진짜 이승만’을 마주하세요” [아무튼, 주말] 입력 2024.02.03. 03:00
김덕영 감독은 이승만 다큐멘터리 ‘건국전쟁’을 만들고 개봉하기까지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왔다. “너 미쳤냐?”며 모두가 반대했다. “자료를 들춰보니 진실은 달랐습니다. 이 다큐를 제작하는 과정은 70년 된 거짓말들과의 싸움이었어요.”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4·19 이후 ‘이승만’은 일종의 금기어였다. 미제의 앞잡이, 친일파, 독재자, 살인마…. 이승만(1875~1965) 전 대통령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는 온통 부정적이었다. 거짓말도 계속하면 진실이 된다. 지난 1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건국전쟁’(감독 김덕영)은 이승만의 진짜 모습을 보여준다. 검은 스크린에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세우기 위해 애쓴 한 대통령의 이야기”라는 자막이 흐르며 영화는 시작된다. 김덕영(59) 감독은 “대학 시절에 나도 그 이름은 부르지 마, 그 길로는 가지 마, 지저분하고 악취가 날 거야 등등 이승만에 대한 가짜 이데올로기를 학습받았다”며 “그런데 객관적 자료와 증거를 종합해 보니 그는 나라의 기틀을 잡은 애국자였다”고 했다. 우리가 이승만을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최근 서울 중랑구 한 스튜디오에서 만난 김 감독은 “전국을 돌며 시사회를 열었는데 많은 관객이 눈물 흘리며 응원해주신다”고 말했다. “이 다큐를 제작하는 과정은 ‘거짓말들과의 싸움’이었습니다. 이승만에 덧씌워진 온갖 비난과 죄과는 대부분 근거가 없었어요. 공(功)은 지우고 과(過)만 부각한 역사 해석, 미처 몰랐던 이승만의 삶과 투쟁에 대해 성찰하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김덕영 감독은 “다큐멘터리 ‘건국전쟁‘을 본다는 건 386 운동권 세대에게 익숙한 ‘해방전후사의 인식’ 너머, 아니 그것에 가려져 있던 세계를 마주하는 일과 같다”고 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만지면 안 되는 이름 다큐와 영화의 차이를 묻자 그는 “사실이죠, 사실”이라고 답했다. “영화는 감독이 이야기를 마음대로 지어내지만 다큐는 사실에 바탕을 둡니다. 특히 시각적 증거를 제시해야 해요. 진실을 추적하는 게 힘들지만 뭔가 찾아냈을 땐 뿌듯해요.” -추구하는 세계도 완전히 다르겠군요. “상업영화는 결국 보상이 있어야 합니다. 부와 명성도 얻지요. 다큐는 가물에 콩 나듯 흥행작이 나오지만 절대다수는 돈이 안 돼요. 그럼에도 이 일을 하는 이유는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그게 뭐였습니까. “지난 70년 동안 지워지고 왜곡된 이승만의 진실요. 조리돌림당한 위인을 더 늦기 전에 원상회복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전작 ‘김일성의 아이들’(2020)과도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문제의식이 연결돼 있어요. 이승만 지우기, 이승만 죽이기라는 거대한 공작의 설계자가 북한입니다. 남한의 친북 주사파 세력은 그 지령대로 움직였고요. 정신적으론 간첩이었습니다. 주변에 학생운동을 하던 친구가 많았는데, 부끄럽지만 저도 당시엔 눈을 감았고 동조했지요.” -감독님은 몇 학번인가요. “서강대 철학과 84학번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1965년 7월에 돌아가셨는데 제가 65년 7월생이에요. 이 다큐는 내가 하라는 뜻이구나 했습니다(웃음). 386으로 불린 저희 세대가 그분한테는 죄인이에요.” -’건국전쟁’은 분단 이후 남과 북이 극단적인 두 나라로 나아간 배경을 설명하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세력이 벌인 ‘역사전쟁’을 포착했습니다. “몇 년 전에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책을 감명 깊게 읽었어요. 최근 재조명된 한반도 위성사진처럼, 분단 70여년 만에 큰 격차가 발생한 까닭은 정치 제도때문입니다. 어느 나라든 건국 초기엔 굉장히 어지러워요. 그 혼란을 뚫고 자유 번영의 기초, 대한민국의 토대를 닦은 건국 세대의 공로는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그 중심에 이승만이 있었어요.” -그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다고요? “저는 솔직히 이승만이라는 인물에 대한 이해가 천박했어요. 역사에 대해 무지했습니다. 짙은 안개 같은 거짓의 이데올로기가 오랫동안 이승만을 중심으로 드리워져 있었어요. 대학 때 배운 이승만은 ‘부정과 모순의 종합선물세트’였고, ‘그쪽은 가시덤불이고 낭떠러지니까 가지 마’라는 말을 무비판적으로 따랐습니다. 이 다큐는 통렬한 자기반성과 수치심에서 출발한 셈이에요.” -다큐에 전문가 20여 명이 등장해 이승만에 대해 말합니다. 어떤 평가가 크게 들렸나요. “그레그 브레진스키 미국 조지워싱턴대 교수의 말입니다. ‘건국은 선언적으론 의미가 없다. 그 나라가 장차 어떻게 유지하고 생존할 것인가, 그 시스템을 만드는 게 진정한 건국이다.’ 아버지가 호적은 등록했지만 가계를 돌보지 않는다면 그게 가정인가요?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토·국민·주권은 기본이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토양을 누가 만들었습니까? 토지개혁, 여성 투표권,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모두 이승만의 업적이에요.” 1954년 8월 24일 미국을 국빈 방문 중이던 이승만 대통령이 뉴욕 맨해튼 영웅의 거리에서 카퍼레이드를 하는 모습. 영화 '건국전쟁'의 김덕영 감독이 2023년 6월 미 워싱턴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발굴한 약 45초 분량의 동영상 일부다. /김덕영 감독 제공 ◇북한은 지금도 이승만과 싸운다 ‘건국전쟁’에 뛰어든 직접적 계기가 궁금했는데, 1995년에 방북했다는 한 목사의 증언이 다큐에 나온다. 평양에서 ‘이승만 괴뢰도당을 타도하자!’는 구호가 적힌 현수막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하야하고 한참 지난 시점인데. “그게 중요합니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이 다 북한에 갔잖아요. 그런데 그 정권에서 어느 순간 남북 관계가 얼어붙어요. 패턴처럼 반복됩니다. 그때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바보가 된 기분이 들었어요.” -왜 되풀이될까요? “좌파·우파의 차이는 아닙니다. 우리가 북한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김일성의 아이들’은 1950년대 동유럽으로 보내진 북한 전쟁고아 5000여 명을 추적한 다큐였어요. 북한의 정치·교육·법·문화 등이 그때 밖으로 함께 나왔습니다. 그 흔적과 자료가 원석(原石)이에요. 북한에 10번 들어갔다 온 친북 인사들보다 제가 북한을 100배 더 정확히 안다고 장담합니다. 그들은 ‘포장된 북한’만 보고 왔을 뿐이에요.” -1995년에 ‘이승만 괴뢰도당을 타도하자!’는 현수막은 어떻게 된 겁니까. “이승만이 죽고 30년이 지났는데, 그 뒤에 박정희·노태우·김영삼 등이 있었는데, 북한은 왜 이승만과 싸울까요? 그를 죽여야 자기네가 살기 때문입니다. 한반도에서 누가 민족적 정통성을 가지고 있는가, 라는 물음 앞에 이승만을 제거해야 김일성이 우위에 설 테니까요.” -지난해 아시안게임 남북 축구에서도 우리를 ‘괴뢰’로 칭했잖아요. “이승만 정권을 미국의 꼭두각시로 헐뜯던 관성이 70년 넘게 눌어붙은 거예요. 북한의 그 근거 없는 우월감에 386 운동권이 동조했고, 역사관을 왜곡하는 투쟁 지침을 끈질기게 전파했습니다.” -거짓말도 계속하면 진실이 된다? “(고개를 끄덕이며) 나치 선전상 요제프 괴벨스가 남긴 유명한 말이죠. 선동은 한 문장으로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합니다.” -그 연장선에서 묻겠습니다. 왜 지금 이승만인가요? “한 인간에게 어떻게 이토록 잔인하고 무자비한 폭력이 가해질 수 있나, 그 이유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서 출발했습니다. 우리 현대사의 비밀을 이승만이라는 키워드로 풀 수도 있겠다 생각했어요. 한국 사람들은 지난 70년 동안 진실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습니다. 자, 반박하는 증거를 보여줄 테니 눈을 크게 뜨고 이승만과 마주하라는 뜻이에요.” |
다큐멘터리 '건국전쟁'의 한 장면. 김구는 소련이 짜놓은 각본에 놀아날 것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하러 평양에 간다. 그는 "대한민국이 건국되더라도 결국 북한에 의해 통일이 될 겁니다. 나는 그때를 기다리기에 이승만 박사 주도의 건국에 참여할 수 없다"고 했다. /다큐스토리
◇'런승만’? 팩트 체크해보니
이승만에 대한 다큐를 만든다고 하자 모두가 반대했다. “가족, 친구, 지인이 다 뜯어말렸어요. ‘너 미쳤냐? 사회적으로 매장되고 싶냐?’…. 특히 ‘괴벨스가 와도 이승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꿀 수 없다’는 말이 굉장히 모욕적이었습니다.”
-그때 심정이 궁금합니다.
“이승만을 물어뜯고 지우려 하니까 호기심이 더 발동했습니다. 그래?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오기가 뻗쳤고 엄청난 동력이 됐어요.”
-그 오기가 확신으로 바뀐 순간이라면.
“2023년 초였습니다. 로케이션(현지 촬영)에 들어가기 전까지 제목에 ‘이승만’이 들어가는 책을 모조리 찾아 읽었어요. 그래야 전체를 파악할 수 있으니까요. 김인서 목사가 쓴 ‘망명 노인 이승만 박사를 변호함’이라는 책이 결정적이었습니다.”
-거기서 무엇을 발견했나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가난한 이승만 정부가 예산의 20% 이상을 교육에 투자했어요. 80%이던 문맹률이 20%로 떨어졌습니다. 원자력이 뭔지도 모르는 시대에 국비 유학생을 보냈고 연구용 원자로를 만들었지요. 미래를 준비한 겁니다. 토지개혁으로 농민이 자기 땅을 소유하게 되면서 토지자본에서 산업자본으로의 전환이 일어났어요. 이승만을 몰아내고 들어선 장면 정권이 1961년 3월 유엔에서 이승만의 업적을 치하한 자료가 그 책에 나옵니다. 다큐로 만들어야 한다는 확신이 섰지요.”
다큐멘터리 '건국전쟁'에 등장하는 이승만 대통령 며느리 조혜자 여사 /다큐스토리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정권이라고 학습했는데.
“사실은 정반대였어요. 검열로 필름을 잘라내듯이 큰 계곡과 같은 단절이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이 다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존경할 만한 이승만의 공을 다 지운 것, 불행히도 그게 한국 현대사였어요.”
-제목은 왜 ‘건국전쟁(The Birth of Korea)’입니까.
“공산주의자들이 지주와 자본가를 처단하고 빼앗은 것을 나눠 갖자고 선동할 때 이승만은 토지개혁을 했습니다. 1949년 좌파적인 의원들이 상정한 주한 미군 철수안은 ‘남침의 초대장’이었어요. 미군이 철수하자 6·25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승만이 공산주의자들과 어떻게 싸웠고 막아냈는지 등 북한 이야기도 곳곳에 등장합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대한민국이 겪은 고난과 좌절, 아픔을 제목에 압축하고 싶었어요. 나라의 기틀을 잡는 위대한 여정을 이승만이라는 선각자가 이끈 거예요.”
-3년간 이승만을 연구하고 추적했는데.
“흔히 김구는 무장투쟁, 이승만은 외교의 달인이라고 하잖아요. 제가 보기에 이승만은 여성 인권 선구자였습니다. 1910년대 하와이에서 버려진 한인 여자아이들을 거두어 교육하려고 기숙학교를 만들었어요. 한국 여성이 투표권을 갖게 된 건 여성운동이 아니라 1948년 이승만 대통령이 밀어붙인 결과였습니다. 스위스, 프랑스보다 빨랐어요.”
-그럼에도 이승만에 따라붙는 수식어는 다 부정적입니다.
“독재자, 친일파, 미제의 앞잡이, 전쟁 때 한강 다리 폭파하고 도망간 ‘런승만’, 막대한 비자금, 부정선거 등등. 다큐를 보면 알겠지만 다 거짓말이었어요. 좌파들이 교묘하고 사악하게 독재자 이미지를 들씌운 겁니다. 이승만은 11년 넘게 장기 집권했지만 거의 매년 투표가 있었어요. 국민의 의견을 물은 겁니다. 의회와 언론이 건재했고 4·19 일주일 만에 권력을 내려놓고 하야했지요.”
1960년 부통령 선거에서 이기붕 부통령 일당이 부정선거를 저질렀다. 그로 인해 4·19 학생의거가 발생하였고, 이승만 대통령은 책임을 지고 대통령직을 내려놓았다.
이승만 다큐멘터리 '건국전쟁'의 한 장면. 이승만 대통령이 6.25 전쟁 중 발표한 라디오 담화문의 진실은 이렇다. /다큐스토리
-팩트 체크를 해봅시다. ‘런승만’은 왜 거짓인가요?
“1950년 6월 27일 라디오 방송으로 이승만이 ‘국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서울을 사수하겠습니다’ 해놓고 도망갔다고들 믿고 있잖아요. 제가 미국 CIA(중앙정보국) 자료를 확인했습니다. 그 담화문 어디에도 ‘국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는 없어요. ‘전황이 어려운데 맥아더 장군이 도우러 온다. 열심히 싸우고 있다’고만 했으니, 명백한 거짓말입니다. 한강 다리 폭파 사건도 왜곡입니다. 전사를 뒤져도 그런 기록이 없어요. 정말 800명이 죽었다면 부상자가 2000~3000명은 돼야 정상 아닙니까? 제주 4·3사건과 달리 민간인 피해자는 한 명도 나오지 않았어요.”
-친일파는 김일성이 많이 등용했더군요.
“다큐에 그것도 밝혔습니다. 이인영 전 통일부 장관이 2020년 국회에서 ‘우리의 국부(國父)는 이승만이 아니라 김구’라고 말했잖아요. 이승만을 깎아내리고 김구를 띄우는 게 북한의 공작입니다. 그래야 김일성이 더 올라가니까요.”
-말년에 이승만은 왜 적극적으로 자신을 변호하지 않았나요.
“4·19 직후 대만 장제스(장개석) 총통이 이 대통령에게 위로의 서신을 보냈습니다. 그때 ‘나는 실패한 게 아니다. 불의를 보고 침묵하지 않은 학생들이 있으니 나는 성공한 것이다’라고 회신했어요. 말년에는 아마 봉쇄당했을 겁니다. 하야 직후 하와이로 갑자기 떠나 죽어서야 돌아온 과정을 보면 가슴이 아파요.”
-자료와 증언을 종합하면 그는 어떤 사람입니까.
“한마디로 애국자죠. 그는 글로벌한 안목과 지성, 결단력을 가지고 있었어요. 고집 불통에 타협할 줄 모르는 지나친 원칙주의자로 욕을 먹을 순 있겠지만, 늘 대한민국, 자신의 국민들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애국심만큼은 변하지 않았던 분이었습니다. 그걸 위해선 미국과도 맞섰고요. 그리고 놀랍게도 그가 꿈꾸던 대한민국은 지금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1954년 미국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 한국전쟁에 자식과 남편, 형제를 보내준 미국의 어머니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다큐스토리
◇“거짓의 선글라스를 벗자”
김덕영 감독은 KBS 일요스페셜 객원 PD 등 방송 일을 하며 생활해 왔다. 자유와 인권을 다루는 리버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건국전쟁’은 제작비 2억원이 들었다.
-영화판에는 좌파가 9할 이상인데 드물게 우파입니다.
“제가 보기엔 좌파가 99.9%예요(웃음). 우파 영화인은 고독한 외톨이죠. 수입은 적지만 강연하고 책을 써서 메웁니다. 저한테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였어요. 과거에는 군부독재에 반대했고 지금은 거짓말하는 세력과 싸우고 있습니다.”
-공격도 받을 텐데 두렵지 않은가요.
“전혀요. 70여 년 전 이승만은 공산주의자들과 목숨 걸고 싸웠습니다. 좌파들이 근거를 가지고 반박하면 좋을 텐데 그러질 못해요. 문재인 정부 때는 이승만을 건국 과정에서 지우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이승만 이름이 들어가면 지원금을 받을 수 없었어요. ‘건국전쟁’도 광신자들에겐 안 먹힐 테고, 이쪽과 저쪽을 다 볼 줄 아는 사람들은 생각이 바뀔 겁니다.”
-1954년 미국 국빈 방문 대목에 등장하는 이승만의 연설이 인상적입니다.
“삶이란 먼저 살다 간 사람들에게 신세를 지는 일이다, 자유의 횃불을 높이 드는 것이야말로 타인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에게 신세를 갚는 일이라고 했지요. 미국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 ‘한국이 암담한 처지에 있을 때 자식과 남편, 형제를 보내주신 미국의 어머니들에게 마음속으로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한 말도 울림이 컸습니다.”
-작가 이문열씨는 보수를 ‘먼저 산 사람들의 수고를 잊지 않는 것’이라고 정의했지요.
“역시 작가답네요. 보수를 고리타분하게 만들면 안 돼요. 그 연속성이 중요합니다. 아이작 뉴턴은 ‘거인의 어깨에 앉아 세상을 본다’고 말했지요. 수많은 거인들이 만든 토대 위에 내가 있는 거예요.”
이승만 다큐멘터리 '건국전쟁' 중 한 장면. 친일 청산을 못한 것은 이승만이 아니라 김일성이었다. /다큐스토리
-영국 저널리스트 마이클 브린은 “분단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대한민국의 발전과 기적은 분단의 결과”라고 평가했습니다.
“두 개의 다른 정치 체제로 갈라져 경쟁을 벌이지 않았다면 남한은 오늘날 미얀마와 같은 사회주의 국가, 일종의 외톨이 국가가 됐을 것이라는 뜻이에요. 다정한 독설이라고 생각합니다. 통일지상주의는 경계해야 해요. 통일은 모든 분야에서 북한을 압도한 뒤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시사회에서 인상적인 반응이라면.
“한 중학생이 ‘건국전쟁’을 보고 말했습니다. 학교에서 이승만은 X만도 못한 놈이라고 배웠는데 깜짝 놀랐다고. 우리가 누리는 평화와 풍요의 기원이 어디에 있는지 이제야 알았다고. 그러면서 더 열심히 살겠다는 겁니다. 감독은 그럴 때 보람을 느껴요.”
-볼까 말까 망설이는 관객이 있다면.
“두려워 마시라, 용기를 내시라, 말하겠습니다. 댓글이 두 갈래예요. 원색적 비난이 하나, 뜨거운 지지가 다른 하나입니다. 비난을 찬찬히 읽어보면 그들이 떨고 있는 게 느껴져요. 진실을 이야기할 테니 마음을 열고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거짓이라는 선글라스를 벗고 이승만의 진짜 색깔을 마주하세요.”
-지금 어떤 소망이 있습니까.
“전작 ‘김일성의 아이들’은 2020년 6월 25일에 개봉했어요. 6·25 70주년인데 정부가 아무 행사도 안 잡았기 때문입니다. 극장에서는 참패했지만 국가와 사회를 위해 좋은 일을 했다고 생각해요. 가장 기쁜 일은 이듬해 국가기록원에서 전화를 받은 겁니다. 핵폭탄이 터져도 끄떡없는 지하 수장고에 보존할 작품으로 선정됐다며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 다큐멘터리는 대한민국 역사와 영원히 함께할 것입니다.’ 눈물이 났어요. ‘건국전쟁’으로도 그런 연락을 받고 싶습니다.”
국가보훈부는 ‘이달의 독립운동가’ 제정 32년 만에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선정했다. 이승만기념관이 건립되면 그동안 흩어지거나 사장된 자료와 영상 등을 모아 그를 제대로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범국민 모금 운동이 펼쳐지고 있잖아요. 이 다큐에도 이름 없는 사람들이 1만원부터 10만원까지 보내옵니다. ‘건국전쟁’의 후원자이자 잠재적 관객, 진짜 이승만을 기억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지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날마다 감동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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