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교수로 계셨던 고 김흥호 교수님의 “계시의 한국”이라는 책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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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 내가 머물렀던 이북 평안남도 노하리에 저녁 감사예배가 일주일동안 계속되었다.
강사는 평안남도 함종군 근방에서 가장 신령한 목사라고 알려진, 큰 교회의 젊은 목사였다.
목사님은 설교에서 우리나라를 해방시켜주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강조하였고, 목사님의 기도는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는 내용이었다. 젊은이들은 매일 감동하여 돌아갔다.
어느덧 한주일이 지나가고 마지막 부흥회날인 토요일이 되었다. 부흥회가 밤늦게 끝나 동네 청년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려고 하는데, 노하리 교회 장로인 김인호 선생께서 강사 목사님이 내일 새벽에 떠나니 그와 같이 자고 새벽에 떠나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날 그 목사님과 한 방에서 자게 되었는데, 자기 전에 그 목사님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자기에게 한가지 모를 일이 있는데 나는 대학을 졸업했으니 자기보다 나을 것 같아서 물어본다는 것이다.
그것은 진지한 이야기였다.
첫 번째 환상
1945년 4월 9일(해방 직전) 새벽 3시에 예배당에 가서 기도하던 중 예배당에 빛이 들어와 벽면을 비추었다. 그 벽에 한국 지도가 나타나고, 한반도를 절반으로 그은 선이 나타났다. 이어서 북쪽은 싸늘한 기운이 차고, 남쪽은 따뜻한 기운이 감돌면서 무궁화가 한 포기 자라나 꽃을 피우고, 그 꽃은 서편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이때 만주 북쪽에서 호랑이가 한 마리 무섭게 북한 땅으로 내려왔다. 북쪽에 있는 사람들은 호랑이에 쫓겨 남쪽으로 넘어가는데, 가운데 그어졌던 선은 성곽으로 변하여 자꾸 높아지고, 사람들은 그 성벽을 넘느라 애를 쓰고 있었다.
이 광경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암흑이 되었다.
두 번째 환상
한참 엎드려서 하나님께 알려 달라고 기도를 하는데 또 빛이 비치었다. 만주에서 북한으로 내려왔던 호랑이가 성곽을 넘어 남쪽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남쪽으로 몰리고 (남해)바다로 뛰어드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 대만 북쪽바다에서 키가 큰 사람들 대여섯 명이 솟아나와 인천쪽으로 올라오더니 호랑이를 몰아 북쪽으로 되돌려 보내어 울타리 속에 가두었다. 또 다시 암흑이 덮여졌다.
세 번째 환상
계속 기도를 하는데 또 한 번 빛이 비쳤다. 북쪽 울타리 속에 갇혔던 호랑이가 울타리를 깨고 남쪽으로 넘어왔다. 이때 남쪽에서 흰 옷을 입은 한 사람이 나타나 호랑이와 죽을힘을 다하여 싸웠다. 종래 호랑이가 쓰러지고 그 사람도 쓰러졌다. 호랑이는 쓰러져 있고 그는 정신이 들어 일어나니 많은 사람들이 태극기를 흔들면서 만세를 불렀다.
이 그림(환상)을 본 함종 교회 목사님은 많은 기도를 했으나 그 뜻을 알 수가 없었다고, 그 때에는 만주에 일본군이 있었고, 해방 전이었기 때문에, 그 목사님은 일본의 핍박이 왜 북쪽에서 시작되어 남쪽으로 가는걸까 하고 생각하였다. 혹시 만주에 있는 일본관동군이 한국인을 살해하는 참사가 일어나지 않을까 하고 무서워하였다. 목사님이 이 말씀을 나에게 하실 때에는 아직 38선이 없었고, 미군과 소련군이 진주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가을이 지나자 38선이 생기고, 소련군이 진군했다.
소련군이 압록강 수풍발전소를 떼어가고 쌀을 실어간다는 소문이 퍼졌고, 만나는 사람마다(나도) 시계를 빼앗겼다.
첫 번째 그림은 38선이 그어진다는 하나님의 계시였으나 당시 8월 말에는 아무도 38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곧 일본군이 쫓겨가고, 소련군이 들어오고, 남쪽에는 미군이 주둔했다. 김일성이 만주에서 내려와 자기 이름을 김성주에서 김일성으로 고치고 북쪽에서 인민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었다. 북한은 인민공화국이 되어 남쪽으로 피난하는 피난민이 날로 늘어났고 남쪽에는 건국과 함께 이승만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그래서 처음 계시는 확실하게 남쪽에 무궁화 꽃이 피었다는 것, 북쪽에는 싸늘한 호랑이가 내려왔다는 것이다.
일년이 지나고 다시 해가 바뀐 1947년 봄 학기가 끝나는 무렵,
함종 교회 목사가 용강중학교 교장실에 있던 나에게 찾아왔다. 자기가 받은 계시가 확실해지고, 북한은 더 이상 살 수 없는 곳이니, 나에게 남쪽으로 내려가라는 것이었다. 자기는 교인들을 버리고 갈 수 없고 교회를 지키다가 죽을 터이니, 나만이라도 남쪽으로 가서 하나님의 계시를 알려주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교감 선생님에게 학교를 맡기고 여름에 남쪽으로 넘어왔다. 해주에서 밤에 물이 나가기를 기다려 안내인을 따라 바다 속으로 들어가 38선을 넘어 옹진으로 갔다. 거기서 다시 배를 타고 인천 해변에 도착했다. 그곳에서부터 걸어서 서울로 갔다.
1950년 6.25 전쟁이 터지기 며칠 전 서울시 사회국장으로 있던 박학전 목사에게도 나는 그 계시를 전하였었다. 전쟁이 터지고 1.4 후퇴 때 나는 제주도로 피난을 갔는데 박학전 목사도 제주도에 내려와 만나게 되었다. 그는 전쟁이 나기 며칠 전에 내가 말한 그것이 바로 이거라고, 이 전쟁이 보통일이 아니라고 서로 얘기했다.(이후 인천상륙작전)
그래서 나는 이렇게 제2장이 지나갔다고 생각했다.
처음 두 계시가 1945년, 1950년에 이루어졌으니 나는 1960년쯤 되면 제3계시가 나타날 것으로 생각하고 이화대학, YMCA, YWCA, 국방부에 가서 곧 3막이 온다고 말했다. 카터가 북한에 간다는 말을 듣고 카터가 흰 옷을 입은 사람이 되는건가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오늘(2000년경)까지 50년이 지났는데 아직 이렇게 제3막은 오지 않고 있다. 이처럼 그 때가 언제가 될지는 전혀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요새는 말을 잘 안한다. 그러나 결론만은 확실하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통일이다.
호랑이가 쓰러지고 태극기를 흔든다는 것은 공산주의가 없어지고 통일이 된다는 것이다. 그때까지 내가 살아 있을지 모르지만, 내가 죽은 후에라도 여러분은 확실히 태극기가 이기는지 인공기가 이기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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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글을 접하자마자 사랑하는 교회가 생각났습니다. 저 환상을 그대로 믿는 것은 아니지만 한가지는 분명합니다. 지금과 같은 시대에 누가 한국을 구할 수 있을까요? 정치,경제, 사회 모두가 혼탁하고 세속화되어버린 한국입니다. 거짓된 구원관으로 기독교인들이 많이 잠들어버린 때입니다. 저는 사랑하는 교회의 간절한 기도가 답이요, 저 마지막 환상에서 공산주의와 맹렬하게 싸우는 흰 옷입은 자는 우리 교회 성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짜 나라를 위해 눈물로 중보하는 이 시대의 깨어있는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진짜 흰 옷입은 자들이라고 여겨집니다.
주일설교말씀부터 계속 더 깊은 기도를 강권하시는 주님의 감동이 교회를 감싸고 있는 것 같습니다. 때맞춰 기도회를 열어주시는 교회에 감사드립니다!! 주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