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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 같은 진리] 중생과 칭의의 차이 (1)

Web Team |

2018-01-02 13:09:48 |

조회: 1010



변승우 목사 저

『다이아몬드 같은 진리중에서..





◆ 중생과 칭의의 차이 (1)

이쯤에서 칭의와 중생의 관계를 정리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최근에 제가 구원론에 대해서 설명할 때 진성원 목사님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 그러면 중생과 칭의가 어떻게 다른가요? 둘 사이의 차이가 무엇인가요?”

과거에 저는 구원을 동전에 비유하여 ‘칭의가 동전의 앞면이라면 중생은 뒷면이다’라고 이해했습니다. 두 가지가 반드시 ‘함께’ 그리고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아주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정확한 설명도 아닙니다. 

칭의와 중생은 죄 사함과 죄에서 자유케 되는 구원의 필수적인 두 가지 요소와 관련이 있는 구원의 대표적인 두 요소입니다. 하지만 대등한 것이 아니라 중생이 칭의의 일부입니다..
 

로마서 6장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칭의에는 예수님의 죽음에 입각한 죄 용서와 예수님의 부활에 입각한 하나님의 능력으로 변화됨이 있습니다. 후자가 중생입니다(롬 6:3, 11과 엡 2:1, 5를 비교해 보라!). 이처럼 둘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칭의 안에 중생이 포함됩니다. 나아가서 칭의는 중생은 물론 성화와 영화까지 포함합니다. 

중생은 구원론의 일부이고, 칭의는 구원론의 전체입니다. 기독교의 구원론은 중생이 아니라 칭의입니다. 칭의로 구원을 설명해야 성화와 영화에 이르기까지 구원론을 가장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이것을 알았을 때, 비로소 오래도록 궁금해했던 의문이 자동적으로 풀렸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죄 사함이 아니라 죄에서 자유케 되는 것이 궁극적으로 구원이고 더 중요한데, ‘왜 성경에 칭의와 달리 거듭남에 대한 언급이 그토록 적은가? 왜 칭의에 대한 내용이 일방적으로 많은가?라는 의문이었습니다. 

만약 제가 구원론을 말한다면 ’중생‘을 더 강조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칭의‘를 일방적으로 강조합니다. ’중생‘은 가끔 언급하고, 거의 ’칭의‘에 대해 말합니다.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입니다. 성경에서 구원을 포괄하는 대표적인 진리는 거듭남이 아니라 바로 칭의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바울이 가르친 ’칭의‘는 지금 유행하는 ’신앙주의‘가 아닙니다. 바울이 가르친 ’칭의‘에는 중생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굳이 중생에 대해서 많이 말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변승우 목사 저
다이아몬드 같은 진리』 
(p. 116~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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