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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세대 중에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석기현목사

오늘도기쁘게 |

2011-07-04 07:00:29 |

조회: 195

 

"이스라엘 세대 중에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
사사기 3장 1-6절
석기현 담임목사


  제가 장례식을 집례할 때에 가끔 '6.25 참전용사' 출신의 고인들을 만나게 되는데, 저는 그런 참전용사의 영정 사진과 그 관 위에 덮여 있는 태극기를 볼 때마다 보통 장례식 때와는 다른, 특별한 감회가 절로 뭉클 솟게 됩니다.
  그분들의 희생 때문에 지금의 우리가 태극기라는 국기를 여전히 내걸 수 있게 된 것이며, 그분들의 애국심 때문에 우리 대한민국이 국내의 온갖 종북좌파들의 선동과 농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런 '6.25 참전 용사'들은 하나씩 둘씩 세상을 떠나고 있으며, 그분들과 함께 '6.25 전쟁'을 겪어 보았던 세대 전체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 대신에 그런 분들의 피로써 지켜졌던 이 대한민국은 이제 '6.25 전쟁을 모르는 전후(戰後)세대'가 이어받고 있는 것입니다.

  몇 년 전 한국정보통계원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초등학생의 35.1퍼센트가 '6.25 전쟁'을 '북침'(남한이 북한을 침공한 전쟁)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50.7퍼센트가 '조선시대에 발발한 전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같은 해에 행정안전부에서 전국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보면 56.8퍼센트가 '6.25 전쟁'의 발생연도를 모르고 있으며, 38퍼센트는 '다시 전쟁이 일어나면 싸우지 않겠다.'고 답변했습니다. 
  '6.25 전쟁'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북한이 주장하는 그대로 잘못 알고' 있으며, '전후세대' 정도가 아니라 '국가안보의식 자체가 완전히 결여된 비둘기파'가 되어 가고 있는 현실인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6.25 참전 용사'의 장례식을 치르게 될 때마다 '한 성도와 육신적으로 이별하게 되는 슬픔'보다도 오히려 '이 대한민국의 장래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염려'에 더 깊이 사로잡히게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제가 바로 '6.25 전쟁' 61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전쟁이 지금으로부터 61년 전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실제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점점 더 모르게 되고 아무도 알려고 하거나 가르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기를 원한다면 절대로 몰라서 안 되고 잊어도 안 되는 이 '6.25 전쟁'을 상기하는 것이 이제는 오히려 '남북화합의 방해물'이나 되는 것처럼 치부되고 있는 현실인 것입니다.

  과연 그렇겠습니까?
  '6.25 전쟁'을 모르고 잊어버리는 것이 우리 조국과 민족이 완전한 평화와 통일을 바라볼 수 있는 바른 길이겠습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이 시간 저와 여러분은 '이스라엘 세대 중에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결국 어떻게 되고 말았는지를 살펴봄으로써 특히 우리나라의 '6.25 전쟁을 겪어 보지 못한 세대'가 꼭 깨달아야 할 역사적 교훈을 함께 새겨 보고자 합니다.

  1. '전쟁을 알지 못하는 세대'는 주적(主敵)의식을 잃게 됨으로써 결국 원수에게 거꾸로 당하게 됩니다.

  본문 1절부터 3절까지에 기록하기를 "1여호와께서 가나안 전쟁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 2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 남겨두신 열국은 3블레셋 다섯 방백과 가나안 모든 사람과 시돈 사람과 바알 헤르몬산에서부터 하맛 어구까지 레바논산에 거하는 히위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가나안 전쟁"은 이스라엘을 있게 한 역사적 전쟁이었습니다.
  출애굽한 이후에 광야에서 태어났던 이스라엘 백성 즉 '광야 세대'는 여호수아의 지도하에 그들의 조상이 40년 전에 지레 겁을 집어 먹고 물러섰던 가나안 본토를 향하여 용감하게 전진해 나갔으며 결국 그 땅을 정복해내었습니다. 
  즉 '가나안 전쟁'에서 이겼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은 그전에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민족'으로부터 탈바꿈하여 '주권과 영토를 가진 정식 국가'로 출범할 수가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광야 세대'가 점점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가나안 전쟁'을 진두지휘했던 여호수아는 이미 죽었고,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수 24:31) 역시 하나씩 둘씩 세상을 떠나갔습니다.
  그 대신에 이제 "가나안 전쟁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가나안 전쟁'을 겪지는 못했지만 그 '가나안 전쟁'이 가져온 혜택만 누리고 사는 새로운 세대가 이스라엘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아주 이상한 일을 행하셨는데, 바로 그처럼 "가나안 전쟁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셨던 것이었습니다.
  이 '시험하다'라는 말은 '테스트하다'라는 뜻과 '연단하다'라는 뜻이 있는데, 이 문맥에서는 후자에 해당됩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지금 전쟁을 겪어 보지 못하고 태어날 때부터 오로지 '태평 시대'에서만 살게 된 이스라엘의 신세대를 '단련'시키려 하셨던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이어지는 2절에서 더욱 분명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특별 연단'의 교육을 위하여 3절에 나오는 대로 "블레셋 다섯 방백"을 위시하여 가나안 본토와 그 주변 지역의 이방 민족들 중 일부를 일부러 "남겨두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심으로써 이스라엘의 '전쟁을 알지 못하는 세대'로 하여금 계속 '전투의식'을 유지시키려 하셨습니다.
  즉 가나안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안이하게 살지 말고 아직도 '섬멸해야 할 적'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완전히 정복해야 할 땅'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일깨움으로써 긴장을 늦추지 말도록 '단련'시키려 하셨던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전쟁을 모르는 자'에게 일부러 '전쟁을 가르쳐 알게' 해 주시는 아주 특별한 교육이었습니다.

  하지만 '가나안 전쟁을 알지 못한 세대'는 하나님의 그런 뜻 깊은 '연단'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 '남겨 두신 열국'을 '싸워서 이겨야 할 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그저 '평화 공존의 이웃'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즉 그들을 완전히 가나안 땅에서 몰아내는 대신에 여호수아 세대의 조상들이 이미 정복해 놓은 땅에서 안주하는 데에만 급급했고, 그 결과 주변 이방 민족은 물론이고 가나안 땅에 남아 있는 본토 민족들에 대해서조차 오로지 '유화 정책'으로만 일관했던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에도 나중에 다윗 왕이 나타나기 전까지 전 사사 시대를 통하여 그 '블레셋 민족'을 비롯한 주변 이방 민족들에게 줄곧 침략과 착취를 당하는 '동네북'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원수에 대하여 '주적의식'을 가지지 않고 그저 적당히 '사이좋게' 지내고자 했을 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결코 '평화 공존'이 아니라 오히려 그 원수에게 거꾸로 잡아먹히는 '패배'일 뿐이었던 것이었습니다.

  '6.25 전쟁'은 대한민국의 주권을 공산주의 침략자들로부터 지켜낸 실로 중요한 역사입니다.
  만약에 우리의 선조들이 이 전쟁에서 졌더라면 저와 여러분도 지금 저 북한의 독재자 김정일의 밑에서 굶어 죽고 얼어 죽고 맞아 죽어 가는 수백만 명 중에 하나가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만약에 저 '참전 용사'들이 오늘날의 청소년들처럼 '전쟁이 일어나도 나는 싸우지 않겠다.'라고 했더라면, 지금 경제대국 세계 10위권을 바라보는 대한민국이 존속하기는커녕 한반도와 한민족 전체가 다 제3세계보다 더 못한 '거지 나라'의 비참한 꼴을 면할 길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처럼 순전히 '6.25 참전 세대' 덕분에 지금 이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대한민국 땅에서 대한민국의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6.25 전쟁'을 왜곡하는 좌파 세력들이 바로 이 대한민국 안에서 버젓이 자리 잡고 있으며 날이 갈수록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초등학생 세 명 중에 한 명이 '6.25 전쟁은 북침이었다.'라고 잘못 알게 된 것도 순전히 이런 자들의 오도 때문인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1950년 6월 25일 아침에 서울에 있었던 사람들은 그날 라디오를 통하여 "모든 국군 장병들은 즉시 귀대하라."는 방송이 계속 반복되는 것을 들었을 것입니다.
  마침 그날이 주일이어서 많은 장교와 사병들이 휴가나 외출 중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남한이 북한을 침략한 것이었다면, 공격 개시일 전날에 그처럼 군인들에게 휴가를 주어서 일부러 병력을 줄여 놓고 전쟁을 시작한다는 것이 말이나 될 일이겠습니까?

  지금 '종북좌파' 세력들은 그처럼 분명히 불법남침을 저지른 북한을 두고서 지금도 입에 발린 듯이 하는 말이 "북한을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입니다.
  아니, 저쪽은 '자극' 정도가 아니라 61년 전에 '무력 남침'을 했으며 지금까지도 걸핏하면 '무력 도발'을 하고 있는데요?
  얼마 전에 어떤 유명한 정치인께서는 "북한을 약 올리는 것은 아무 유익이 없다."라고 하시더군요.
  저쪽은 '약 올리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한테 어뢰를 발사하고 대포를 쏘아대고 원자폭탄으로 위협을 하고 있는데요?
  그런데도 우리 대한민국은 저 '민족의 원수'이며 '국제적 악의 축'인 김정일과 '평화 공존'을 해야 한다고 하니 이 무슨 얼빠진 소리입니까?

  그처럼 대한민국의 진짜 원수에 대한 '주적 의식'이 결여된 자들은 오히려 '대한민국 안에 있는 적'을 만들려 하기 마련입니다.
  '6.25 전쟁'이 '북침'이었다고, '미국'이야말로 '민족통일의 방해자'였으며 지금도 그렇다고 어린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전교조'는 우리나라 안에서 '없애 버려야 할 50개의 대기업들과 50개의 대형교회들의 명단'을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소위 '계급투쟁'을 부채질하고 '종교는 마약'이라고 선동하는 북한 공산주의자들과 똑같지 않습니까?

  '6.25 전쟁을 알지 못하는 세대'가 이런 '종북좌파'에 의하여 세뇌되어 버린다면 그 결과는 정말 두려우면서도 뻔한 일이 될 뿐입니다. 
  '북한은 우리의 적이 아니다. 전쟁이 일어나도 나는 대한민국을 위해 싸울 마음이 없다.' - 그렇게 된다면 우리 대한민국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는 말할 필요조차 없는 것입니다.
  '주적의식이 결여된 자'는 이미 적에게 굴복하고 있는 '패배자'일 뿐이며, '국방의 의무'를 신성하게 여길 줄 모르는 사람은 애초에 '국민이 될 자격'부터가 없는 진짜 '반역자'요 '매국노'에 불과함을 절대로 잊지 않는 진정한 '대한민국 국민'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전쟁을 알지 못하는 세대'는 영적 타락으로 인하여 끝내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됩니다.

  4절 이하 6절에 "4남겨두신 이 열국으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여호와께서 모세로 그들의 열조에게 명하신 명령들을 청종하나 알고자 하셨더라 5이스라엘 자손은 마침내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 사이에 거하여 6그들의 딸들을 취하여 아내를 삼으며 자기 딸들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며 또 그들의 신들을 섬겼더라"고 기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남겨두신 이 열국" 즉 앞서 3절에 나왔던 이방 민족들을 통하여 또다시 "이스라엘을 시험"하시려고 했습니다.
  여기의 '시험'은 앞에 나왔던 '연단'과는 달리 '테스트'입니다.
  그것은 곧 이어지는 4절 하반절의 "여호와께서 모세로 그들의 열조에게 명하신 명령들을 청종하나 알고자 하셨더라"는 말씀을 통해서도 명백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에게 주변 이방 민족들을 남겨 두신 또 하나의 이유는 그들의 '신앙을 테스트하기 위함'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열조에게 명하신 명령"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은 곧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고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십계명 제1, 2계명이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본토인들과 주변 이방 민족들은 하나님께서 바로 이 계명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의 "청종"여부를 테스트해 보시는 데에 있어서 적절한 '시험지'와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모두는 다 우상숭배하는 민족이었으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정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자 한다면 결코 그들과 교제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가나안 전쟁을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 세대'는 이 '테스트'에도 실격하고 맙니다.
  5절과 6절에 나오는 대로 "이스라엘 자손은" 그 이방 민족들 "사이에 거하던" 중에 끝내 "그들의 딸들을 취하여 아내를 삼으며 자기 딸들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을 '이스라엘의 적'으로 알지 못하고 '평화 공존해야 할 이웃'으로 여겼으니 그런 '통혼'이 일어난 것은 자동적인 순서나 다름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또 그들의 신들을 섬겼더라"는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고, 그처럼 십계명 제1계명과 제2계명을 범한 결과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스스로 사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앞서 여호수아 24장 31절에 보면 "이스라엘이 여호수아의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을 아는 자의 사는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더라"는 의미심장한 기록이 나옵니다.
  이것은 '가나안 전쟁'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역사'를 "아는 자"들이 생존해 있을 동안에는 그래도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섬기는" 신앙을 지켰다는 뜻입니다.
  반면에 그 조금 뒤에 나오는 사사기 2장 10절에서는 그런 여호수아 세대가 세상을 떠난 후에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모르는"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이란 바로 '가나안 전쟁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도와주신 일'을 가리키는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즉 '전쟁을 바로 깨닫고 기억하는 것'이 '신앙을 바로 지키는 것'과 직결되었던 것입니다.

  제가 미국의 어떤 한인교회에서 실제로 목격했던 일입니다.
  매주일 오후에 있던 대학부 성경공부 시간이 어느 주일에 갑자기 무슨 '북한 선교에 대한 특강'이라는 순서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북한을 다녀왔다는 두 명의 목사들이 어떤 장로의 주선으로 그 교회를 방문하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기독교 전도는커녕 종교의 자유 자체가 아예 없는' 북한에 도대체 어떻게 선교를 했다는 것인지 처음부터 미심쩍었는데, 몇 마디 들어 보니 역시 제 짐작대로였습니다.
  그들은 북한이 선전용으로 세워 놓은 '봉수교회'에 한 번 다녀온 것을 두고 '북한 선교'를 했다면서 강의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중에 한 목사는 우선 자기가 어릴 때 '반공 교육'을 받으면서 "북한군은 다 머리에 뿔이 난 줄 알았었는데 실제로 만나보니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더라."는 냉소적인 농담으로 말을 시작했습니다.
  저도 그들과 똑같이 '군사정권 시절의 반공교육'을 받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처럼 '북한군의 머리에 뿔이 나 있다'고 배운 적도 없고 저 혼자 그렇게 상상해 본 적도 없습니다만, 아마 그분은 저와는 달리 무척 '순진한 어린이'였나 봅니다.
  그 목사는 이어서 말하기를 자기네들이 봉수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는데 '우리와 똑같은 찬송가'를 부르더라고 하면서 거기서 녹음해 왔다는 테이프까지 틀어 주었습니다.
  북한이 봉수교회에 외국 사람들을 초청해서 예배라는 것을 보여 줄 때에는 그 주일에만 특별히 '동원된 교인'들이 모이게 되고 처음 보는 찬송가라 해도 '악보만 보면 척 부를 수 있는 성악 전공자'들을 모아서 성가대를 급조한다는 사실은 만천하에 알려진 일인데, 그 목사들이 그것을 몰랐다면야 그 역시 그저 '순진무구한 목사'여서 그랬다고 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들의 진짜 본색은 그 다음 말에서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그것은 "북한 선교는 옛날 미국 선교사들이 처음에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 했던 식으로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구원의 복음'이라는 것은 북한이 받아 주지 않기 때문에 이제는 '화해의 복음'을 가지고 북한을 선교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은 남북한을 화해시키기 위한 것이었다.'라고 전도하면 김일성도 얼마든지 기독교를 용납해 줄 것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참 '기똥찬 복음' 아닙니까?

  그 목사들이 끝으로 덧붙였던 말은 그야말로 '화룡점정'이었습니다.
  그 마지막 멘트는 "이런 이야기는 여러분 대학생들과 같이 맥주나 한 잔씩 마시면서 나누어야 더 좋은데..."라는 것이었습니다.
  소위 '북한 선교'에 대한 토의라는 것을 교회에서보다 술집에서 해야 '더 잘 통한다.'라는 말이 명색이 '목사'라는 사람들의 입에서 거침없이 나왔던 것이었습니다.

  제가 이것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6.25 전쟁'의 진실을 부인하고 침략자 김일성의 동상 앞에 절하고 오는 목사는 어김없이 '가짜 목사'입니다.
  '한반도 분단'과 '동족상잔'의 원흉인 공산주의자들과 '통혼'하는 기독교인이란 실상은 두말할 것도 없는 '배교자'들일 뿐입니다.
  이것은 절대로 예외가 없고 틀림이 없는 '등식'입니다.

  이처럼 '전쟁을 알지 못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안이함과 나태'에 빠지게 만들며 그것은 결국 '영적 타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적을 적으로 알지 못하는 세대', '하나님의 원수와 동침하는 세대'는 결국 '하나님을 떠나는 배교의 세대'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방 민족과의 교류와 통혼을 '평화 공존을 이룩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이스라엘의 전후 세대'가 결국 하나님의 징벌을 받게 되었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저 무신론의 공산주의자들을 '하나님의 원수'요 '기독교의 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자들이야말로 조국과 교회를 더 큰 위험에 빠뜨리는 '배반자'들임을 똑바로 깨닫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날의 '전후세대'의 청년들과 학생들은 '6.25 전쟁'을 '역사'를 통해서 바로 배우지 못하고 그저 '영화'를 통해서 잘못 인식하고 있습니다.
  미군의 참전을 은근히 비꼬는 '웰컴투 동막골'이나 두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발생한 전쟁 때문에 억울한 민간인들만 희생당했다는 식으로 강조하는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따위의 영화들이 이 '6.25 전쟁을 모르는 세대'가 '6.25 전쟁'을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교육이 되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러니 이들은 만약 그때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이 참전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자기네들이 그처럼 영화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사회에서 살 수도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자각할 리가 없고, 그처럼 '무고한 사람'들을 헤아릴 수 없이 많이 희생시킨 전쟁의 장본인은 절대로 '민주주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추종한 무리였다는 사실을 알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전쟁의 실체는 그 어떤 영화로도 묘사할 수 없을 정도로 정말 비참합니다.
  군에 징집된 남자들은 전장에서 총에 맞아 죽고 후방에 있는 민간인들도 폭격에 찢겨 죽습니다.
  부부가 생이별을 하게 되고 수많은 어린이들이 하루아침에 고아가 됩니다.
  아군에 의해서도 집이나 식량이 징발되고, 적군이 점령한 곳에서는 아내와 딸이 눈앞에서 강간을 당하게 되는 일까지도 다반사로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끔찍한 비극을 겪지 않고 이런 '평화 시대'에 태어나 살고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큰 축복이겠습니까?

  하지만 바로 그런 까닭에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일수록 절대로 전쟁을 '몰라서는' 안 됩니다.
  '6.25 전쟁' 발생연도조차 모르고 있으면, 여러분의 부모들을 총포로 쏘아 죽이고 탱크로 짓밟아 죽였던 침략자들을 '평화 공존해야 할 같은 민족'이라고만 생각하고, 반대로 이 대한민국을 지켜 주기 위하여 전사자만 해도 3만 7천 명에 달하는 자국 청년들의 피를 희생해 주었던 우방 미국을 '여중생 2명을 탱크로 깔아 죽인 원수'라고 매도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6.25 전쟁'을 '북침'이라고 알고 있으면, 지금 이 순간에도 수십만 명의 지하교회 성도들을 박해하고 투옥시키고 고문하고 온갖 끔찍한 방법으로 죽이고 있는 저 '하나님의 원수'를 무슨 '화해의 복음'이라는 것을 들고 가 만나서 포옹을 해야 할 '합리적인 통치자'라고 추켜세우고, 반면에 바로 이 대한민국 안에 있는 '교회'들을 '없애버려야 할 적'이라고 살생부를 만들고 있는 교사들이 추천하는 사람을 교육감으로 버젓이 뽑아 놓게 되는 것입니다.

  '전후 세대'일수록 최소한 '전쟁을 알기는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그처럼 '전쟁을 겪지 않고 있는 축복'을 계속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민족의 원수'에게 미소만 보내다가 결국 거꾸로 당하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대적'과 포옹하고 있다가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징벌을 받게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6.25 전쟁을 모르는 세대', 우리 '학생들과 청년들'은 이것만은 꼭 '알아야' 합니다.
  '6.25 전쟁'은 결코 '북침'이 아니라 명백한 '남침'이었으며, 무슨 '통일전쟁'이 아니라 '동족상잔의 침략전쟁'이었다는 사실만은 '바로 알아야'만 합니다. 
  '반공(反共)'은 절대로 '군사정권의 독재 유지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우리 대한민국이 공산독재국가가 되는 대신에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출발하게 해 준 소중한 '건국(建國)정신'이라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반공'은 '6.25 참전 용사'들이 자신의 목숨을 바치기까지 하면서 이 조국을 지키게 만들어 준 '국시(國是)', '나라 국 자'에 '옳을 시' 즉 '대한민국의 바른 이념'이라는 사실을 여러분이 적어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절대로 몰라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몽고메리 장군은 '전쟁의 역사'라는 그의 책 서문에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전쟁을 이해해야 한다."라는 너무나 훌륭한 말을 남겼습니다.
  그것은 달리 말하자면 곧 '전쟁을 모르면 평화를 누릴 수 없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6.25 전쟁'이 생생하게 보여 준 '역사의 교훈'을 상기하고 성경이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 명백하게 가르쳐 주는 '역사의 경고'를 깨달음으로써 조국 대한민국을 원수로부터 지켜내고 우리 한민족의 진정한 평화통일을 하루라도 더 빨리 앞당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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