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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4 20:50:40 |
조회: 537
말세의 징조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말세의 징조로 전쟁과 기근과 재난을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성경적으로 맞지만, 100% 정확한것은 아닙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핵심은 따로 있습니다. 성경적인 말세의 두 가지 핵심적인 징조는 배도와 적그리스도의 등장입니다.(살후 2:1~12) 전쟁과 기근과 재난은 곁가지입니다. 사도 바울은 두 가지 핵심적인 징조가 나타나기전까지는 누군가 말세가 임했다고 하더라도 쉽게 두려워하거나 마음이 흔들리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무엇이 핵심이고 무엇이 곁가지를 구분하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저는 담임목사님의 성경 해석을 철저하게 신뢰합니다. 수 많은 이유가 있지만, 핵심적인 이유를 세 가지 들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목사님 성경 해석의 지지기반이 철저하게 문맥에 기초한 ‘상식적인 사고’라는 것입니다. 목사님의 성경해석은 물론 하나님의 계시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 해석의 권위는 단순히 계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저자들에게 주어진 계시는 특별계시이므로 그 자체로 객관적이지만, 그 외 모든 사람에게 임한 계시는 일반 계시이므로, 틀릴 수도 있고 주관적입니다. 그러므로 계시에 기초한 성경 해석을 100% 신뢰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100%짜리 성경해석은 무엇입니까? 바로 성경의 문맥에 근거한 해석입니다. 그런데 성경 문맥에 대해서 더 깊이 생각해 볼 지점이 있습니다. 과연 성경 문맥이라는 것은 원어를 깊이 탐구한 전문가가 알 수 있는 것인가? 또는 신학자들만 알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제가 사랑하는 교회에 오기 전 전통적인 교회의 성경해석에 대해 의문을 가질 때마다 주변에서 받은 충고는 ‘넌 신학자나 전문가가 아니잖아’라는 것이었습니다. 정통교회에서 인정하는 전문가들의 해석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신학 박사학위를 딴 분들, 히브리어 헬라어에 정통한 분들이 이렇게 주장하는데, 히브리어 헬라어라고는 한 글자도 모르고, 신학을 전공하지도 않은 너 따위가 감히 알겠어? 하는 것입니다. 이런 반문이 의학에서는 통할지도 모릅니다. 첨단 과학에서는 이런 말이 통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신학에서는 아닙니다. 성경은 상아탑의 전문가들을 위한 책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에게는 감추어진 책입니다. 진리의 해석에는 최고급의 학문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물론 도움을 받을 수 있겠으나) 겸손함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겸손함만 갖추고 있다면 누구나 들을 귀를 갖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제대로 된 성경해석은 전문적이라기보다 상식적입니다. 요리로 치자면 5성급 호텔의 전문 쉐프 요리가 아니라 백종원식 요리입니다. 최고급 달팽이요리처럼 집에서 하기에는 엄두도 안나는 그런 요리가 아니라 백종원식 두부부침, 멸치 조림처럼 누구나 평범한 식재료로 쉽게 도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해석을 들었을 때 누구나 알 수 있고 공감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이 ‘성경적’이라는 말을 참 남발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들이 갖고 있는 이른바 성경적이라는 개념이 성경의 문맥을 통해 볼 때 전혀 성경적이 아닌데, 단순히 성경에 써 있다는 사실만을 갖고 사람들이 성경적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통념적인 사고로 성경 문맥에 대한 정직한 고민과 분석 없이 무비판적으로 무분별하게 성경적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변승우 목사님은 이러한 통념을 사정없이 깨부수는 분입니다. 변승우 목사님의 견해는 생경할 수는 있으나 결코 이상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로 성경의 문맥을 상식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특징이 극명하게 나타나는 것이 바로 요한계시록 설교입니다. 환란 전 휴거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이론과 목사님의 말씀을 비교해보겠습니다.
환란 전 휴거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공중 재림과 지상 재림으로 나누어서 생각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단순합니다.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온다는 것입니다. 통과설이라면 어떻게 주의 날이 도적처럼 온다는 것인가? 이러한 단 하나의 의문에 근거해서 그들은 말도 안 되는 이론을 만들어 냅니다. 재림이 두 번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주님께서 도적같이 오셔서 그분의 택하신 성도들만 데려가고 두 번째에서야 불신자들도 볼 수 있게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상식적으로도 말이 되지 않습니다. 일단 성경에서 재림을 명확하게 공중재림과 지상재림으로 구분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교리를 증명하기 위해서 강림과 주의 날을 억지로 구분하여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해석이 엉망진창으로 꼬이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을 날조하여 갖다 붙여야만 합니다. 성경이 구분하지 않는 것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구분하다보니 엉터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변승우 목사님의 성경해석은 상식적으로 성경의 문맥을 따라갑니다. 이번 주 설교말씀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살전 5:1~5
1절은 때와 시기를 전혀 모른다고 말씀하므로, (환란전 휴거설을 주장하는 자들에 따르면) 당연히 공중재림을 뜻하는 구절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이 뭐냐? 그 날을 주의 날이라고 부르고 있어요. 이것만 봐도 벌써 환란 전 휴거설을 주장하는 자들이 틀린거에요. 환란전 휴거설을 믿는 자들의 주장과 달리 사도 바울이 강림하심과 주의 날을 다른 날이 아니라 같은 날로 보고 있다. 사도 바울은 재림이 단 한번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환란 전 휴거설은 완전히 무너집니다. 그 뒤에 깨어 기다리라는 구절만 보아도 환란 전 휴거설을 믿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공중재림이죠. 그런데 그것이 주의 날이죠. 그래서 환란전 휴거설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요.
이처럼 목사님의 성경해석은 단순하면서도 명쾌합니다.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경에 쓰인 그대로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문맥적으로 무엇보다도 상식적으로 그러하다는 것이 공감이 되기 때문입니다.
변승우 목사님 말씀의 두 번째 특징은 100%가 아닌 500%의 정확성이라는 것입니다. 이번 주일 설교에서 이에 대해 목사님이 농담처럼 말씀하셨지만, 저는 그 말씀에 깊이 공감하였습니다. 왜 500%냐면, 한 가지만으로 100%인데, 이러한 100%짜리를 적게는 서너 개, 많게는 일고여덟 가지를 대기 때문입니다. 더불어서,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이론에 대해서도 그 이론들의 핵심적인 오류들을 들어 반박하기 때문입니다. 전쟁에서 교전 후에는 죽은 적들을 확인사살합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죽은 척 하는 적들의 기습을 예방하고, 아군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입니다. 목사님이 철저하게 성경을 파헤치고, 500%이상의 정확성을 추구하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잘못된 교리는 우리를 파멸로 이끌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혼의 안전이 걸린 일이기 때문에 이처럼 철저하게 확인하고 검토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모든 결론이 성경의 통전적 주제와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중에 기승전OO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말을 하든지 OO이라는 결론으로 귀결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의 삶은 기승전예수님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변승우 목사님의 설교는 기승전 성경의 통전적 주제입니다. 이번 말씀의 최종 결론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환란을 통과해야 하니까 지하 벙커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까? 속세를 버리고 숨어살라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순교 신앙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비겁하게 도망갈 생각, 환란을 피할 생각하지 말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죽기로 결단하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목사님의 성경 해석은 항상 성견의 통전성으로 귀결됩니다.
요한계시록 설교를 들으며, 경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불가능할 것으로만 생각했던 요한계시록이 해석되고 눈에 들어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이아몬드 같은 진리가 별 7개라면, 요한계시록 해석은 별 10개가 모자를 정도로 최고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무슨 자격이나 잘나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사랑하는 교회로 불러주셨고, 오직 은혜로 세기적인 설교를 듣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요한계시록 설교를 들으며 자주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제는 더 이상 전과 같은 수준으로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이 받은 자에게 많이 요구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경이로운 해석을 들으면서 놀라는 순간순간마다 제가 그리스도인 답지 못했던 수많은 순간들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회개합니다. 주님을 더 사랑하고 주님 닮은 사람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주님, 더욱더 낮은 마음으로 자기를 비우고 주님 닮은 사람으로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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